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준 황후 (문단 편집) === 어렵게 아들을 낳다 === 나가코 황후는 결혼 후 '''[[공주]]만 내리 4명을 낳는 바람에''' 온나바라(女腹-딸만 낳는 여자)라며 무수한 비난을 당했고, '''측실([[후궁]]) 제도의 부활까지도 거론'''될 지경이었다.[* 일본 황실에서 [[일부일처제]]가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 덴노 때이다. 데이메이 황후에게서 아들만 4명이 태어나 모두 건강하게 성장했기 때문에, 측실([[후궁]])을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. (이전까지는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해, 측실 소생의 아들로 천황직이 계승되고 있었다.) 일부일처제가 법제화된 건 쇼와 덴노 때다. 그러니까 이 말이 나왔을 때는, 아직 일부일처제가 확고하지는 않았을 때다.] 그러나 쇼와 덴노는 측실 제도에 대해 "인륜에 어긋나는 일"이라며 거부했고, 측실 후보로 선정된 화족 규수 3명의 [[사진]]이 제출되기까지 했으나 "훌륭한 숙녀들이니, 어울리는 곳에 시집가기를 바란다."며 신하들에게 도로 돌려주었다고 한다. 드디어 1933년 12월 23일 나가코 황후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들, 장남 츠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을 낳았다. 1935년 11월 28일에는 [[차남]] 요시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을 낳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